불안불안한 남과 북… 국방예산 축소 필요한 까닭

4월12일부터5월15일까지한국을비롯하여필리핀,미국,이탈리아,스페인등전세계각지에서2024세계군축행동의날(GDAMS)캠페인이진행됩니다.세계군축행동의날캠페인은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세계군사비지출보고서발표에맞춰군사비를줄이고,평화를선택할것을각국정부에촉구하는국제캠페인입니다.

‘두개의전쟁’으로전세계가매우불안합니다.2022년발발한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은휴전의기미는보이지않고,전세계가지켜보는가운데이스라엘의팔레스타인집단학살이지속되고있습니다.전세계가거대한폭력의악순환을끊기위해노력을기울여야하지만,앞다투어군비증강에몰두하고있어평화와협력을어렵게하고있습니다.전쟁과무력분쟁은인류와지구를파괴할뿐아니라기후위기를심화시키고있습니다.

이에한정된예산을전쟁과전쟁준비가아니라생명과일상을위협하는시급한문제해결에사용할것을제안하는연속기고를진행합니다.한국에서는4월22일(월)오전11시용산전쟁기념관앞에서세계군축행동의날기자회견과퍼포먼스를실시하였고,같은날오후7시토크쇼를성황리에개최하였습니다.[기자말] 큰사진보기 ▲ “사람과 지구를 위해 지금 당장 군비 축소!”녹색연합,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피스모모, 한베평화재단 주최로 2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모두를 위협하는 군사비, 1초에 1억 너무 많아! 사람과 지구를 위해 지금 당장 군비 축소! 2024 세계군축행동의 날(GDAMS)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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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립 이후 딱 한 해를 제외하고 한 번도 삭감된 적 없는 예산이 있다. 바로 국방예산이다. IMF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었던 1999년에 딱 한 번 약 500억 원이 삭감되었다.

2024년 국방예산은 전년 대비 4.2% 증가한(약 2조 3천억 원) 59.4조 원가량이다. 문재인 정권 당시 국방예산 최고 증가율이 8.2%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다소 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부 총지출 증가율을 감안하면 2017년 이후 최초로 국방예산 증가율이 정부 총지출 증가율을 넘어섰을 정도로 국방비의 비중이 크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2024-2028 국방중기계획에 쓰이는 예산은 총 349조 원으로, 5년 동안 연평균 증가율이 7%에 달한다. 계획대로라면 2028년에는 국방예산이 80조 원이 된다. 물론 실제로 반영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계획으로만 본다면 현 정권이 국방예산에 무척 큰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전 정권기 2020-2024 국방중기계획에서도 연평균 증가율이 7%를 넘긴 것을 보면 국방예산 증가 일변도의 태도는 소위 ‘보수’, ‘진보’ 정권에 상관없어 보인다.

안보에 도움 안 되는 일 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

한 국가의 안보 정책은 보통 해당 국가를 둘러싼 정세와 국가가 처한 위협에 대한 인식에 기반해 수립된다. 즉, 정세와 위협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안보 정책이 달라진다. 정책은 돈을 쓰는 것이다. 국방예산이 계속 증가해 왔다는 사실은 위협 역시 커졌다고 인식했음을 뜻한다. 이 지점에서 소위 ‘안보 딜레마’가 작동한다.

한 나라의 군비증강은 타국에게는 위협이 된다. 작용과 반작용이 계속 이어진다. 군비경쟁의 악무한(惡無限)이다. 올해 국방예산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바로 ‘한국형 3축체계’다. 3축체계에 국방예산 중 방위력개선비 17조 6천억 원 중 거의 40%가량이 투입된다. 2024-2028 국방중기계획에서도 41조 이상이 3축체계 강화에 배정되었다.

3축체계는 오로지 대북용으로 구성된 공격체계다. 3축체계에서 ‘킬체인’은 북핵 발사 징후 발견 시 선제타격한다는 개념을 포함하고, 대량응징보복은 이름처럼 공격을 당했을 시의 보복으로, 지도부 참수작전 등을 포함한다. 킬체인은 적 공격의 ‘임박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량응징보복은 보복의 ‘즉각성’과 ‘비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국제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그만큼 공격적인 체계다. 다르게 말하면 3축체계의 강화는 북한이라는 위협을 매우 크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축체계는 문재인 정권 당시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핵·WMD 대응체계’라고 바꿔 불렀지만 원래대로 회귀했다. 이는 윤석열 정권에서 부활한 주적 개념과도 맞물려 있다. 주지하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국방백서 등 국방과 관련해 공표되는 공식 문서에 ‘(주)적’을 표기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적이라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직접적 방식이 아닌 구체적 사안과 행위에 ‘(잠재적) 위협’ 정도로 기술한다.

적을 명시적으로 언급해 괜히 적대감을 부추기는 등의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 안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분법적인 주적개념은 ‘반공’의 이분법을 경유하는 ‘공산전체주의’의 문법과도 겹쳐 있다. 북한을 대표로 하는 ‘공산전체주의’자들은 대화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즉·강·끝'(즉각, 강하게, 끝까지)으로 응징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간주된다.

남한의 국방비 증액, 신뢰 구축에 부정적 영향
큰사진보기 ▲ 북한 미사일총국은 19일 오후 서해상에서 전략 순항미사일 ‘화살-1라-3’형 초대형 전투부(탄두) 위력 시험과 신형 반항공(反航空·지대공) 미사일 ‘별찌-1-2’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20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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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에 전쟁기념관 북한도발관(정식 명칭은 ‘북한의 군사 도발실’)이 확대개편되어 다시 문을 열었다. 이름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북한의 도발 사례만이 나열되어 있다. 박정희 정권 때의 ‘7.4 남북공동성명’이 짧게 언급되어 있지만 이마저도 북한이 위장평화전술을 펼쳤다는 식의 서술로 끝맺는다. 하지만 위장평화전술이 아니었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켰던 역사 역시 분명히 존재했다.

“두려움은 일어날지도 모르는 나쁜 결과에 집중하고 희망은 좋은 결과에 집중한다.”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책인 <타인에 대한 연민>(책의 원제는 ‘두려움의 군주제 The Monarchy of Fear’다)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에 비추어본다면, 북한도발관, 주적 개념, 3축체계, 그리고 끝없이 늘어나는 국방예산과 같은 북한을 향한 모든 움직임은 결국 ‘일어날지도 모르는 나쁜 결과’에만 집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이 대통령이나 국방정책 결정자 등의 개인적인 두려움 때문이라는 뜻이 아니다. 위협과 적대감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상상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문정인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와중에도 문재인 정부가 군비증강을 지속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우리가 북한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도 무기체계를 증강해야 되겠다라는 안보 딜레마의 공포에서 비롯된 헷징(위험분산)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평화 프로세스 좌초의 원인을 단순히 남한의 국방비 증액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신뢰 구축의 측면에서 볼 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하다.

희망보다 두려움이 더 많은 이유는, 희망이 두려움보다 더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군사적 수단이 아니라 평화적 수단으로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과정의 어려움 때문에 이상적인 구호로만 받아들여지기 일쑤다. 역대 ‘비핵화’와 관련해 열렸던 수차례의 회담 역시 각 당사국들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입장 등 복잡한 셈법을 조율하지 못했고, 심지어 비핵화의 정의마저 합의하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실패로 보아야 하는가? 이따금 찾아왔던 대화와 협상의 국면은 잠시간이나마 ‘평화’를 상상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9.19 남북군사합의가 발효되고 연평해전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등 각종 국지적 충돌로 상시적인 불안 상태에 있었던 접경지 주민들의 삶은 상대적으로 안전해졌다.

작년 11월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해 한국 정부는 9.19 군사합의의 일부 효력을 정지시켰고, 북한은 완전 효력 정지로 강력하게 대응했다. 접경지역은 다시 불안에 휩싸였다. 윤석열 정부 1년 차까지의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수는 최소 74발로, 문재인 정권 5년 동안보다도 많은 수치다. 남북 모두 ‘강대강’으로 군사적 해법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군사적 대치에만 집중한 결과 전쟁의 위험은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남북 간 소통 채널이 완전히 불능 상태에 빠져버린 지금, 우발적인 충돌이 전쟁로 확대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높아 보인다. 전쟁 방지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군사적 수단의 강화가 더 실패에 가깝지 않은가?

적과의 대치 상황에서 군사비를 줄이는 것은 군사비를 늘리는 것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보통 싸움에 임하는 것을 용기라고 생각하지만, 싸우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데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대치 상황에서 한쪽이 먼저 총을 내려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희망은 어렵다. 적으로만 생각했던 대상과 이야기를 나누고 협상을 해가는 과정은 훨씬 지난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작은 불똥마저 전쟁의 겁화로 이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선택해야 할 길은 막대한 군사비를 평화 구축을 위한 예산으로 전환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을 선택하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신재욱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활동가입니다.